[소화계통의 질환]
영화산책 : 미 비포 유 (Avant Toi)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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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19-09-16 조회 :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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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before you, 행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합니다 Avant toi, Je choisis la mort pour le bonh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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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좋은 기회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도 외부환경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가 힘들어진다. 때론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루이자’처럼 가족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접어둔 채로 살아간다면 자신도 힘들어지고 주변사람들까지 힘들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내 인생 속에 자신을 위한 선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윌과 루이자 - google image
<미 비포 유>의 주인공 ‘윌’과 ‘루이자’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가치관에 차이가 있었다. ‘윌’은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괴로워하다가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루이자’는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꿈을 접어둔 채로 살아간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른 주인공들의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변화를 주었지만 각각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루이자’가 ‘윌’을 위해 만든 버킷리스트를 같이 경험하면서 윌은 잠시나마 삶의 기쁨을 느끼고 가난했던 ‘루이자’는 윌의 도움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며 꿈을 다시 가지게 된다. 이 계기로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후에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싹트게 되지만 이어지진 못한다.
윌에게 삶의 즐거움을 다시 알려주는 루이자 - google image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과 자신의 사고에 대한 원망과 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윌은 처음에는 까칠한 태도로 루이자를 대하지만 자신을 아픈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루이자의 삶은 윌과는 다른 면에서 힘들지만 그녀의 마음만은 순수하고,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그 마음이 사람을 편견없이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 유명한 빨간 드레스 장면 - 네이버 영화
이 장면은 예고편에서도, 영화평에서도 많이 거론된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루이자의 모습이다. 윌이 나중에 말하지만 열심히, 강렬하게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말에 어울리는 옷이 아닐까싶다. 열정과 정열을 상징하는, 레드. 윌의 버킷리스트라고 하지만 사실은 루이자를 위한 윌의 계획이었을 것 같다. 하나씩 이뤄가는 리스트들을 보면 정상인이었을 때의 윌이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만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고이후, 다시 시작하는 마음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의 추억이기에 새로운 경험이자 소망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윌의 버킷리스트를 같이 완수해나가는 루이자 - 네이버 영화
어느 덧, 윌의 버킷리스트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끝에 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윌의 죽음이다. 처음에 루이자는 윌이라는 사람을 도와주고, 자신의 고용인정도로만 생각해서 그의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후부터는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이 하루라도 늦춰지기를 기대하고 윌의 확고한 마음을 어떻게 해서든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마 윌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흔들림이 있었겠지만 그의 마음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 윌과 루이자, 삶의 선택의 순간 À un moment de la vie, que choisirez-vous ?
자신의 삶을 찾아 파리로 온 루이자 - google image
영화는 흘러흘러 웃고 있는 루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파리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윌의 편지를 읽는다.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소원이 예전의 멋있었던 모습으로 파리에서 여유를 즐기며 퐁네프다리를 걷는 것이라 말했던 윌을 떠올린다. 이 장면을 보면서 파리를 여행으로 왔을 때 나도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퐁네프 다리를 천천히 건너면서 강을 오랫동안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새로운 시작’라는 의미가 있는 퐁네프 다리는 연인들이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영원함을 위해 같이 걷는다고 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윌의 부재와 혼자 남은 루이자이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고자 하는 것은 루이자의 새로운 시작에 날개를 달아준 윌, 영원한 사랑의 위대함을 알려준 루이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윌의 안락사 결정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닥친 고통 - google image
위에서 말했듯이 ‘윌’은 자신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루이자’와 함께 파리에 가지 않고 존엄사를 택했다. 모든 것이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윌이 장애로 인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했고, 가족을 위해 희생만 했던 루이자가 또 다시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게 된 ‘루이자’는 ‘윌’의 선택이 이기적이라고 울며 애원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다.
‘윌’은 ‘루이자’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유라는 열쇠를 주었고 ‘루이자’는 ‘윌’의 마음에 있던 타인에 대한 원망과 삶의 고통을 덜어주고 마지막을 함께 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윌’이 ‘루이자’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내용 중 “live well, just live”는 자신이 살았던 삶을 ‘루이자’도 느껴보길 원한 윌의 진실된 마음이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껴도 어느 순간 자신이 그녀에게 온전히 의지하게 되고, 나중에 그녀와 가족이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질까봐 윌은 어쩌면 안락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을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결국, 안락사를 선택한 윌 - google image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윌’의 죽음을 암시하는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 뒤로 ‘루이자’가 파리 광장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행복한 얼굴로 ‘윌’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줄 때 '문학작품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했다. '베어만 할아버지'가 폐렴을 앓는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벽면에 그리며 자신의 희생을 통해 존시에게 삶의 기회를 준 결말부분이 미 비포 유의 ‘윌’과 ‘루이자’와 오버랩 되었다.
윌과 함께 없지만 윌의 추억이 함께하는 루이자 - 네이버 영화
인생은 도돌이표처럼 다시 내가 원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또한 주변사람은 내 인생의 조언을 해 줄 수 있지만 결국 인생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그래서 <미 비포 유>의 ‘루이자‘도 ‘윌’의 선택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과 이별을 통해 삶도, 사랑도 그리고 죽음마저도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이다. 그래서 책임도 내가 져야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안락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또 하나 느껴야 할 점은 그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고 남은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가이다. 안락사에 대하여 Avant toi, à propos de l'euthanasie
유럽의 안락사 실태 - google image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심야로 감상했다. 그 때 써놓은 감상문도 있지만 다시 생각나게 된 것은 최근 집주인 할머니 친구의 안락사 소식때문이다. 바캉스 시즌이었는데 원래 스위스로 자주 왔다갔다하셔서 이번에도 여행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의 안락사 증인 중 한명으로 갔다오셨다. 결국, 자기는 끝까지 보지 못하셨다고 하는데 그 친구의 의견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미비포유를 찾아보게 되었고, 안락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원래는 무조건 반대만 하고, 안락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타당한 이유나 안락사가 필요하다면 부분적인 수용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한다면 안락사를 마음 먹은 사람들은 결국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안락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엄격한 제한과 절충한을 찾아 점차 변해가는 게 맞다고 느낀다.
아직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에 대해 갑론을박 의견이 다양하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 목숨이 한 번 뿐인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죽고 나면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후회할 때면 이미 늦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왜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죽을 용기로 살아가라는 말말이다. 하지만 갑자기 윌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죽음만을 기다리게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의지박약이 아니고, 노력해도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해탈의 한 형태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식물인간이 있다. 안락사를 시키려면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데 10년, 20년이 넘어도 깨어나지 않고, 만약 돈을 댈 수 없는 가정이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에게 과연 살인자라는 죄목을 주홍글씨처럼 남길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참..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주제였다.
윌의 세가지 조언 - youtube band annonce
그리고 마지막, 윌 : '강렬하고, 잘, 그리고 심플하게 살아라. '. 어쩌면 본인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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